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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걷다/경기옛길[봉화길]

경기옛길)봉화길(제9길,설성산길)16km[24-12-25[토]

설성면행정복지센터~성호저수지~설성상정상~이천선읍리석불입상~청미교사거리(경기도경계)
스탬프 : 이천선읍리석불입상 앞

 
갈때: 원흥역06:32(3호선)~신사07:18?(신분당선)~판교07:50(경강선)~이천역
25번(08:50)(설성면행정복지센터)하차 길건너
올때: 감곡터미널~동서울(16:35)(9.500)~강변역(18:11)(2호선)~을지로3가역(3호선)원흥역

 
설성산 정상에서 느껴지는 여운
역사 보장(保藏)의 길
설성산은 산 정상에 '설성'(雪城)이라 불리는 성이 있어 설성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성' 은 신라가 성 쌓을 마땅한 곳을 물색하기 위해 이천 일대의 여러 산을 헤매다가 설성산에 와서 보니
이상하게도 지금의 성이 쌓인 자리에만 돌아가며 띠를 두른 듯 흰 눈이 내려있어서
눈의 자취를 따라 성을 쌓고는 이름을 '설성' 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설성산은 등반한 고도에 비해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은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청미천을 따라 하천변에 수놓은 들꽃의 향기를 느끼며 봉화길의 마침표를 찍어보시길 바랍니다

 
행정복지센터로 들어가니 시작부터 경로이탈이 나온다
이곳에서 맨 오른쪽 길로 가면된다

 
우리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금도 개 사육을 하는걸까??

 
그늘진 곳에는 아직 눈이많아 미끄럽다

 

성호저수지를 지나 설성산으로 간다

 
신필2리 마을회관을 지나 설성산으로 가는길

 
설성산으로 올라 가는길

 
낙엽이 쌓여있어 많이 미끄러운 길이다

 
설성산 정상까지 30여분 걸린듯 하다
설성산 해발 280m

 
소박한 설성산 조망

 
이후부터 설성산 신흥사까지는 짧지만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신흥사 둘러보기

   
 

 
절 이름이 궁금했을뿐 이곳이 우리가 문화유산 인증해야 하는걸 깜박했었다
우리 두 사람의 협력으로 세명 다 문화유산 인증 성공~

 
설봉산성(경기도 기념물 제76호)
이 산성은 설성산 정상부와 그 북쪽에 위치한 봉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계곡을 포함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설성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지역이 넓은 평야지대인 관계로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이천시내와 설봉산성 여주지역 남으로는 음성지역 일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요충지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1,095m 이고 남북의 길이가 345m 동서의 길이가 320m 이며
부정형의 방향에 가까운 형태이다
성벽은 전구간에 걸쳐 양족을 모두 쌓아올린 협축법(夾築法)으로 쌓았으며
자연암반의 윗부분을 다듬은 후 잘 다듬어진 성돌을 쌓아올렸는데
면을 맞추어가며서로 엇물리게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대략 4~5m 정도이고 구조적으로는 취약한 부분에는 성벽 외면에
성벽 기단부를 보강하기 위한 보축(補築)을 하였다
문지는 동문지와 서문지가 확인되었으며 성내의 평탄한 곳이 많아 여러개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에 이르는 여러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안에는 신흥사(新興寺)라는 절이 있다
설성산성은 백제가 처음 쌓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축성방법이나 출토유물을 고려할 때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이후 쌓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어려운 이야기라 이해가 잘 안되지만 옮겨 적어보았다)

 
설성산성 동문터~이천 설성산성(경기도 기념물 제76호)은 경기도 장호원읍 설성산 봉우리와
그 아래 큰 계곡을 포함하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약 1,095m 폭 5m 높이 4~5m이다
설성산성의 동문 터는 설성산성에 대한 초기 지표 조사에서 서문과 함께 확인되었다
조사 당시 서문은 바닥 시설,측벽,배수로,내옹성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그러나 동문은 1970년대 도로 개설로 인해 심하게 붕괴되어
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후 2014년에 설성산성 6차 발굴 조사를 시행하여 동문 터의 성벽 기단부와
내 외벽 흙다짐 기단을 보완한 흔적 등 축성 구조를 확인하였다
기단부는 성벽이 축성된 경사 지형을 고려하여 기반암을 계단 형태로 다듬었고
그 위에 내벽과 외벽을 쌓아 올렸다
또한 성벽의 안전성을 보강하고자 외벽 기단부에 석재를 쌓아 올리고
외벽과 내벽 뒤쪽에 뒤채움 돌을 쌓고 성 안쪽으로 흙은 채워 내벽을 보강 하였다
동문 터의 동쪽 방향 성벽은 2011년~2013년 복원하였다
서족 성벽은 2014년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옛 모습을 알 수 있도록 2015년에 복원하였다

 
음죽군 읍치 선읍리 이야기
삼한시대의 노람국(怒藍國) 을 삼국시대의 노음죽현(奴音竹縣)에 비정되는데
이는 노람이 노음과 비슷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옛음죽군의 중심인 장호원은 본래 장해원(長海院)이라는 역원(驛院)에서 유래되는데
일제시대에 갑자기 장호원(長湖院)으로 바귀었고 이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합니다
장호원읍은 흐르는 청미천(淸渼川)은 원래 천민천(天民川)인데 대동여지도의
작성과정에서 천미천(天尾川)으로 오기(誤記)가 되었고 나중에 지금의 청미천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장호원 읍과 설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설성산에는 설성(雪城)이라는 성이 있는데
신라 시대에에는 눈이 띠를 이루며 내려 쌓인 흔적을 따라 성을 축조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선읍리는 봉화로의 노선상에 위치한 3번 국도(경충대로)에 약간 빗겨 있으나
실제 옛길 노선 상에서는 지금과 같이 곧은 형태가 아니며 행려자가 머물기 위해
선읍리로 약간 우회하는 노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천 선읍리 석불입상(利川 鮮邑里 石佛立像)
지정별 : 경기도 향토유적 제10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산110
1986년 4월 이천시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설성산 기슭의 신흥사로 오르는 진입로 옆에 있는 불상으로
원래는 전체를 1석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대좌,불신,불두,보개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1석으로 조성한 후 연결시켜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각 부분이 1975년 10월 선읍리마을 앞 개천과
논바닥(1135번지 일대)에 묻혀있다는 말을 들은 신흥사 주지 월선스님이
발굴작업으로 대좌 불신 보개를 찾아 1977년 4월 부분조성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하였다
불두 부분은 발견되지 않아 1983년에 새로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대좌는 자연석 윗부분을 다듬은 뒤 5엽의 연꽃을 복련으로 새겨 넣고
대좌 윗면 한가운데 홈을 파고 촉을 넣어 불신과 연결시켰다
대좌위 크기는 높이 20cm 폭 97cm 정도이다
불신은 둥근형태로 광배를 새기고 그 안쪽으로 신광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쪽으로 도드라지게 불신을 새겼다
불신의 크기는 폭103cm 높이155cm이며 어깨 폭은 약 60cm 이다
보개는 긴 쪽이 103cm 짧은 쪽이 86cm 인 타원형 판석을 불두 위에 얹은 형태이다
불상의 전체적인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탬프 찍고 출발~아직 갈 길이 멀다 10km쯤 남아있다

 
청미천 비행장

 

충청도                                       경 계                                          경기도

 

경기옛길 봉화길 제9길 이곳 청미교 사거리에서 걷기를 마친다

장호원 터미널과 감곡터미널은 거리가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리를 건너 경기도에서 경계를 넘어 충청도 감곡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아침에 버스타기전 한컷 이천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