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을걷다/평화누리길

경기도 김포시)평화누리길,3코스(한강철책길)17km[25-02-13[목]

걷기 : 애기봉입구~마근포리 마을회관~연화사~석탄리 철새조망지~전류리포구

 

갈때 : 원흥역(3호선)~대곡역(서해선)~김포공항역(김포골드라인)~운양역~7번버스~애기봉입구하차 걷기[15분정도}

전류리포구~7번버스~운양역(김포골드라인)~김포공항역(서해선)~대곡역(3호선)~원흥역

 

한재당~한재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모함을 받아

2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이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은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입구의 홍살문과 외삼문 내삼문 사당인 정간사를 일렬로 배치한 구조이다

이 사당 앞길 바로 밑에 있던 구사당(1848년 건립)은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정면 3칸 측면2칸이며

일주문과답장이 둘러 있었으나 현재는 담장만 남아있고

신사당은 이목의 후손들에 의해 1974년 이곳에 다시 건립되었다

사당에는 이목의 위패와 숙종 43년(1717)과 경종(1722)에 추중 한 교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이목은 김종직의 제자로 25세 되던 연산군 원년(1495) 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영안도(함경남도의 옛이름) 평사를 지냈다

추중 :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술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여기서 오른쪽 방향으로 3코스걷기를 시작한다 (09:20)

 

박신묘역~박신(1362~1444)은 여말선초의 문인이다

정몽주의 문인으로 1386년(우왕11)문과에 급제하고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자 원종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세종 때 통진에 13년동안 유배되었으며

통진과 강화 갑곶진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리기 위해서 물에 빠지는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사저를 털어 석축로(성동나루)를 만들었다

1432(세종14)년에 유배에서 풀려나 (??)일기로 이곳에 묻혔다

묘역 앞에 향나무는 선생이 심고 심신을 수양했다 하여 학목(學木)으로 불렸다고 한다

 

깨우침을 주는 나무(향나무)

조선 초 영의정을 지낸 박신은 마음을 수양하고자 이 향나무(500년)를 심었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학문을 닦는데 힘써서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심성이 악하거나 어질지 못한 사람 행동이 불미한 사람이 이곳에서 공부하면

어질고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 배움에만 전념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학목(學木)이라 부르며 학문을 닦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비어있는 축사를 지나

 

저 멀리 개들이 보이고~ 가까이 가보니 목줄도 없는 여러마리의 개가 짖어댄다

길을 걸을때 목줄없는 개들을 만날때는 너무 무섭다

 

한참을 개와 눈싸움하다~이녀석 눈도 깜작안하고 노려보고있다~

난 갈길이 바빠 그냥간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전류리포구 평화누리길 3코스 완주

 

전류리포구
현재까지 포구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강의 유일한 포구입니다
전류는 물이 뒤집혀 흐른다는 뜻으로 이곳에서 바닷물과 강물이
하루에 두 번씩 교차하며 뒤섞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전류리포구는 제방도로를 만들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부근의 붕성포와 함께
과거에는 큰 포고마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주로 농어 웅어 장어 등을 잡아서 서울에 내다 팔았습니다
또 이곳은 서해로부터 마포나루로 가려는 배들이 밀물을 기다리며 머물다 가는

기착지이면서 마포에서 실어온 물건들이 들어오는 유통의 중심지였습니다
포구 일대는 마포나루로 가려는 사람들과
파주 서패리나루(심학나루) 를 오가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습니다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많았던 만큼 먹을 곳 쉴 곳이 필요했는데
조선시대에는 부근에 전류참이라는 공용숙박시설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전류리 주막도 있었습니다
근대기에는 돛배를 대신하여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황보환 이라는 이름의 기선이 기착했습니다
이때에는 풀막(물가 근처에 지붕을 갈대나 풀로 잇고 임시로 이용하던 초막)

형태의 선술집이 5채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류리포구 버스정류장에는 정류장 표시만 있고 교통정보는 없다  

이곳은 지나는 버스가 자주없는곳이기에

아무버스나 먼저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 환승이되기때문에~

오늘은 기다리지않고 타려고했던 7번 버스가 와서 운양역으로 바로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