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역~단석천~삼산역~경기도경계
스탬프 : 솔치 임도구간 진입로
갈때 : 원흥역(3호선)~종로3가역(1호선)~청량리역(중앙선 무궁화호)양동역
올때 : 삼산역(중앙선)청량리역(1호선)~종로3가역(3호선)~원흥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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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내안의 길을 찾는 명상의 길
솔치길은 총10개 코스로 이루어진 평해길의 마지막 구간으로 고요함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자신 안에 숨어있는 내면의 잠재성을 명상을 통해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이 길은 양평에서도 힐링로드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숨겨진 명소이기도 합니다
솔치 임도길에서 나를 위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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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양동역~양동역은 양동면 쌍학리에 위치한 중앙선의 철도역입니다
양동역은 중앙선을 경유하는 태백선 영동선 열차도 다니지요
양동면에 있는 다른 기차들이 모두 역이 위치한 마을에서 이름을 따온것과 비교하면 의외일수는 있는데
면소재지에 있는 역답게 양평의 동쪽에 있다는 면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역들이 마을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잡는 경향이 있는 반면
양동역은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농협하나로마트 도서관 등이 역 주변에 늘어서 있지요
인근 주민들이 양동역을 이용하면 이곳에서 생활에 필요한 볼 일은 거의 다 해결할 수 있지만
기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양동면 내의 다른 역보다는 사정이 나쁜 편이어서 무궁화호 열차가 하행선 10회 상행선 9회 정차합니다
그래도 기왕에 중앙선 복선 전철화가 된 마당에 수도권전철이 이곳까지 연장되는 것이 최선이기에
양평군과 양동면에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지평역에서 양동역 사이에 있는 역들의 승객 수요가 적어서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현재의 양동역 건물은 새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역사는 어디에 있을까요
궁금해하는 분이 있을까봐 말씀드리면 구역사는 헐어서 없어졌지요
194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에 따라2012년 새 역사가 생기며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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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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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곡천의 여덟 명소~동계팔경
동계팔경은 양동면을 남북으로 흐르는 석곡천의 여덟 명소를 말합니다
석곡천은 양동면 금왕리에서 발원하여 석곡리 일대를 흐르다 쌍학리에서 계촌천과 단석천을 합수한
후 삼산리에서 삼산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입니다
구둔치길을 넘은 평해로는 석곡천을 따라 내려가다 쌍학리로 들어서지요
택당 이식이 지금의 양동면 쌍학2리 안골마을인 백야곡에
택풍당을 짓고 은거할 때 동쪽에 있는 개울인 석곡천 이십여리중 노닐어 볼 만한 곳 여덟 곳을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계팔경이지요
동계팔경에 대한 내용은 택당집 동계기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계팔경은 제1경(조적대) 제2경(부연) 제3경(건지산) 제4경(송석정)
제5경(양계합수처) 제6경(조봉석벽) 제7경(승담) 제8경(구암)입니다
이 여덟 명소가 하루 빨리 복원되어 명승 자원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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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밭인줄 알았더니 인삼을 줍는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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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학리 마골~명성황후의 피난처였던 쌍학리 마골
양동면 쌍학리의 산마을인 마골은 예전에 말이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구한말 명성황후가 피난을 했던 마을로도 유명하지요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궁궐을 탈출하여 51일간에 걸쳐 피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명성황후가 피신한 곳은 그간 충청북도 충주로 알려져 있었지요
하지만 최근 명성황후의 피신에 관한 행적이 담긴[임오유월일기(壬午六月日記)가 발견되어 이전의 학설과는 달리 명성황후가 도합 7-8군데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고된 피난생활을 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7월2일 기록에는 지평 섬실에 있는 전 현감 안정옥의 집으로 옮기셨다고 되어 있지요
그런데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안정옥의 요청으로 마골에 사는 영해박씨가 집을 내어주고
황후를 모셨다고 하는데 그 가옥이 현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마골에는 명성황후에 얽힌 지명들이 많이 남아있지요
마골 위쪽 산등성이에는 망재라는 곳이 있습니다
명성황후가 이마을에 머물 때 항상 이고개에 올라 서울의 궁궐 방향을 바라보며 좋은소식을 기다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지요
또한 요골에서 마골로 넘어가는 골짜기의 이름은 식량골인데 황후 일행이 먹을 양식을
이 골짜기를 통해 날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명성황후가 마골에 머문 기간은 열흘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듯 많은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이 일이 마골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사건이었던 듯합니다
하기야 민가가 4-5가구밖에는 없던 이 산골마을에 국모가 피신해서 숨어있었다는 것이 어디 있을법한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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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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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인데 조용하다 아마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것같다 볕이좋은 곳을 찾아 간식을 먹고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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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의병 때의 격전지-삼산리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는 정미의병의 본거지 중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의병을 토벌하려는 일본군과 이곳에 주둔하는 의병들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지요
1907년 정미년은 고종의 강제퇴위 정미7조약 군대해산이 벌어진 해입니다
이에분노한 의병들이 전국각처에서 봉기하였지요
이중 양동면은 이인영 의병대장이 이끄는 의병진이 주둔하였던 곳이었습니다
양동면은 산악지대가 많은 분지형 지형을 가지고 있어서 구둔치 벗고개 모른고개 송치 등
양동면으로 들어오는 여러 고개에서 적들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지요
적의 공격이 있을 경우 응전하면서 시간을 지체할 수 있고 반격과 대피도 손쉬울 뿐 아니라
서울이 가까우면서도 군사적 요새로서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양동면에는 삼산리 석곡리 매월리 석우리 등 전역에 걸쳐 의병진들이 분산되어 주둔하였는데
5000여 명에 달하였고 이들의 본진은 삼산리였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 대토벌 작전을 개시하였고요
삼산리 전투는 그해11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벌어졌습니다
일본군 토벌대는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말을 이용하여 이동이 빨랐고 신무기로 무장하였는데 반해
의병들은 개인화기는 미약하였지만 수적으로 우세하고 지형지물에 밝아
나름대로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며 용감히 싸웠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토벌대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의병진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산속으로 흩어지며 훗날을 도모하게 됩니다
서울진공작전을 위하여 양주와 원주 등지에 재집결했던 것이지요
이후 서울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삼산리 전투는 이 작전을 계획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한
의병항쟁사에서 의의가 큰 전투였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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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역 옆길로 경기도 경계길로 가는길~
국유임도 방문때에는 신고를 하고 걸어야 한다
임도길을 지나 경기도 경계까지 갔다가 다시돌아와 삼산역에서 10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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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길 솔치길 당산(堂山)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당산
당산은 양평군의 동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산입니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과 여주시 강천면 및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지요
높이는541m이고 험준한 바위지대가 없는 반면 넓은 게곡이 환히 트여 있어 산행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산에는 다래나문 군락 호랑이와 산신령의 석고상이 모셔져있는 자연동굴등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또한 당산 정상은 참나무 수림으로 덮여있고 남쪽 능선에 바위를 감고있는 특이한 소나무도 있지요
능선에는 창출 백출 등의 약초가 많고 곰지기골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으니
한여름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교통편은 삼산2리에 버스정류장이 있지만 배차간격이 장난이 아니지요
멀지않은 곳에 중앙선 삼산역이 있으니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합니다
철도여행과 더불어 산행을 바로 할 수 있으므로 수도권의 주말 가족산행지로 적격이지요
산행에는 약4시간 정도가 소요되니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요
평해로가 통과하던 삼산리의 솔치마을에 당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예전 양평에서 원주시 지정면 안창마을로 가기위해 넘어야했던
솔치와 대솔치의 두 고개도 당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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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간격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마침 버스가 지나간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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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복분자가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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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치~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던 소송치와 대송치
삼산리는 양평의 동남단에 자리하는 마을로 원주시 지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주감영 가는 길로 이용되던 평해로가 이 마을을 통과했음은 당연하지요
원주시 안창마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소송치와 대송치 두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두 고개를 오르기 직전에 삼산리 당산자락에 위치한 솔치마을이 나옴니다
이 마을에는 예전 주막집이 있어서 고개를 넘는 과객들이 쉬어가곤 하던 곳이지요
소송치는 솔치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마주치는 고개입니다
야트막한 고개이므로 그리 힘들이며 넘던 고개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 고개를 넘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대송치를 또 넘어야 했다는 것이지요
예전 소송치에서는 열십자로 두 개의 산길이 교차했습니다
원주로 가는 남북으로 뻗은 산길뿐 아니라 당산 줄기를 따라 여주 강천면으로 가는 길도 있었지요
소송치를 넘으면 대송치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 이어집니다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와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지요
산골짜기 주위로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곳을 왜 솔치고개라고 부르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평해로 옛길 위로 88번 국지도가 덧씌워져 있어 수월하게 고갯마루를 지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상당히 험준하기로 소문난 고개였지요
을미년 지평의병이 결선되었을 때 지평현감이 방해를 피해 원주의 안창마을에서 거의하기위해 넘던 고개이고
삼산리 전투 대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고개이지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송치 정산에는 충정의향의 고장임을 알리는 삼산리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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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쉼터 버스정류장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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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온 숲길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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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길을 나와서 삼산역으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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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부추가 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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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을 파는 곳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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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나 삼산역으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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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역도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무인으로라도 역마다 기차가 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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