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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걷다/평화누리길

경기도 연천군)평화누리길,11코스(임진적벽길)18km[25-05-07[수]

걷기~숭의전지~당포성 입구~주상절리~임진물새롬랜드~허브빌리지~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

 

동두천중앙역 3번 출구에서 52번 타고 종점인 숭의전에 하차

약수터와 홍살문을  지나 시작점인 숭의전으로 올라간다

오늘 걷기 완주는 했지만 도보길과 자전거길로 오 가며 소우물다리에서 도보길로 합류했다









 

군남홍수조절지를 향해 출발~



 

잠두봉(蠶頭峰) 과 썩은소의 전설

이곳의 지형이 임진강 건너편에서 바라다보면

마치 누워있는 누에의 머리처럼 보인다 하여 잠두봉누에머리라고 부른다

잠두봉에는 숭의전의 건립과 관련된 썩은소의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방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왕족인 왕씨들은 큰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뜻있는 왕씨 몇 사람이 태조 왕건의 신위를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돌로 배를 만들어 싣고 예성강 입구에서 바다로 띄워 보냈다

바다로 나간 돌배는 임진강을 거슬러 황해도 안악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동이리의 한 절벽에 이르자 이 배는 더 이상 나가지 않고 멈추었는데 왕씨 후손들은

배를 쇠로 만든 닻줄에 메달아 놓고

주위에서 왕의 신위를 모실만한 장소를 찾다 날이 저물어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배는 사라지고 배를 묶어 두었던 쇠닻줄은 모두 썩어 없어져 버렸다

크게 놀란 왕씨 후손들은 잃어버린 돌배를 애타게 찾으며 강을 따라 내려오다

누에머리 절벽 아래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 돌배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늘의 뜻이라 여긴 왕씨 후손들은 절벽 위에 사당을 짓고

태조의 신위를 모신 후 숭의전이라 이름하기로 하였다

지금도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가라앉은 돌배가 물속에 비쳐 보인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하니 개가 심하게 짖는다~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나오셔서

길이 아닌곳은 내 준거니 이해하라고 하신다~암요 감사해요


 

 오른쪽 방향이 조금전에 버스타고 지나온 길이다


왕순례 묘~향토문화재 제23호
초대 숭의전사를 지낸 왕순례(미상~1485)의 묘이다
왕순례는 고려 제8대 현종의 먼 후손으로 본명은 왕우지 이다
왕순례는 고려 멸망 이후 지금의 충남 공주에 숨어살다가
문종 대인 1451년 숭의전의 제사를 배향할 왕씨의 후손을  찾았을때 관에 알려진 인물이다
왕명에 따라 순례 라는 이름과 함께 전답과 노비를 하사받고 숭의전사로 임명되어 숭의전의 제사를 주관하였다
한동안 실전 되었던 묘는 1988년 주변 도로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
나지막한 봉분과 함께 석물로는 모표와 최근에 건립한 망주석 1쌍이 있다
묘표 앞면과 뒷면에 쓰여 있는 문자를 통해 이 묘가 숭의전사 왕순례 묘라는 것과 148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포성에 잠시 들렀다 나왔다





사적 제468호 

당포성은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 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이다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절벽이기 때문에 별도의 성을 쌓지 않았으며 평지로 연결되어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나머지 한 면(동쪽) 에만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내부를 성으로 사용하였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으로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신라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구려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포성은 고구려시기에 처음 축조되었지만 신라가 점령한 후에는 성벽을 고쳐 쌓아 계속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성내부에서는 고구려 기와와 함께 신라 기와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당포성 동벽~당포성의 동벽은 성내로 진입이 가능한 동쪽 방면을 차단하는 방어시설이다
성의 규모는 높이6m 폭 31m 길이 50m 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을 쌓아 만든 성벽으로 보이지만 석성을 쌓기 전에 먼져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올린 토심석축의 구조이다
중심 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3단의 보축성벽을 쌓았으며
성벽 앞에는 폭 6 깊이 3m 의 구덩이를 파서 적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동벽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된 수직의 기둥홈이 관찰되는데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 패왕조산성 흑구산성 평양의 대성산성 등 고구려의 산성들에사 확인된 바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특히 당포성 동벽에서는 수직의 기둥홈이 하부의 학과 세트를 이루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는 성벽의 훼손 및 붕괴 위험이 있어 흙을 덮고 잔디를 식재하여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당포성에서 나와 오른쪽 길로 이어간다


 

폐교가 된 왕산초등학교 마전분교~



 

조금 무서웠지만 길에서 가까운 유엔군 화장장 터에도 들러나왔다

 

전곡재래시장에서 이곳을 지나는 버스가지나간다~배차시간은 100분 이상





 

이곳에서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전거길이었는데

마을 길이 좋아서 그냥 걸었다










 

가는길은 아니지만 길이 너무예뻐서 들러나왔다~뱀도 만나고~








 

주상절리길로 제대로 왔으면 이 다리를 건너온다

다음에 다시 걸어야겠다



 

평화누리길 소우물다리~우정리(牛井里) 

본래 마전군 동면의 지역으로 임진강 옆에 큰 우물인'소우물' 이 있어 우정리(牛井里) 라 하였다

옛날에는 이 벌판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으나 수리 시설이 없어서 논으로 활용도 못하고

너무 질어서 밭으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쓸모 없는 땅이었다

그래서 그저 소나 매놓는 정도였다

벌판 한 모퉁이에는 분수처럼 솟아 오르는 큰 우물 하나가 있어서 '분수정(噴水井)' 이라고 불렀다

넓은 벌판의 모든 소들이 분수정에 모여 물을 먹었다는데 유래하여

이 벌판을 순수한 우리말로 '소물개' 라고도 불렀다

소가 많았다고 하여 소 우(牛)자와 분수정의 정(井)자를 합하여

지금의 우정리로 일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미산면에 편입되었으나

1945년8월15일 광복이 되면서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6.25가 끝난 후인 1954년11월17일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6개반. 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있다


















 

한참동안 벚꽃길이 이어진다~꽃이 있을때는 더 예쁠듯~










 

또 한번의 고비 10여마리의 개들이 목줄도 없이 슬금슬금 나온다

무섭지만 멈출수가 없다~다행이 더이상 따라오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왼쪽 언덕길로 조금 올라가야 11코스 도착지점이다

조금있다 다시돌아나와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야한다



 

오른쪽 방향에 선곡리육묘장 버스정류장이 있다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 55번 버스가 지나갔는데

다행이 조금지나 연천역방향으로 가는 82-4번 버스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