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재발견
혁신행정으로 폐광의 기적을 만들어낸 광명동굴(가확광산)은
국내를 넘어 셰계적인 문화관광 명소가 되었다
2015년 유료화 개장 이후 불과 10월 만에 관광객 100만 명이 넘어서고
수입 40억 원 일자리 200여 개를 창출허고 도농 상생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 혁신 행정의 모델로 우뚝 섰다
무표정한 바위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로 사용되었던 광명동굴 속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가 지어준 고운 이름이 있었겠지만 피난민들은 아이를 '굴댕이'라고 불렀다
바위에 기대 잠을 청하는 산모의 모습이 불편해 보인다
어디에선가 떨어진 물방울이 산모의 얼굴과 이불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다
굴댕이의 메아리
'굴댕아' 라고 부르면 동굴의 메아리가 먼저 대답을 했다
어둠 속에서 산모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2010년까지 지역민들의 새우젓 저장고로 사용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래포구의 상인들은 한 통에 1만원씩 내고 동굴에 새우젓을 숙성시켰다
약1km의 수평갱도를 따라 1년에 3천여 통의 새우젓이 동굴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연중 기온 12~15도의 발효와 숙성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1972년 야적장의 광미가 마을과 논밭을 덮쳤다
1972년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야적장에 방치되었던 광미가 마을과 논밭 하천을 덮쳤다
흥청거리던 일대는 순식간에 회색빛 황무지로 변해버렸고 피해보상과 환경문제로
시흥광산은 결국 문을 닫았다
1996년 야적장의 광미를 모두 제거하고 그 자리에는 현재 자원회수시설이 들어서 있다
광미 : 금광석을 찧어 금을 거의 고르고 난 뒤에 남아 처진 돌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