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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곳/서울~경기

경기도 수원시)수원화성 산책[25-08-29[금]

장안문 *1974년(정조 18) 창건*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1975년 문루 복원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문이다 정조는 장안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현륭원(융릉)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장안문은 남문인 팔달문과 더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2층의 누각은 네 모서리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지붕 형태다

길고 휘어진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 시대에 우진각 지붕은 궁궐이나 도성의 정문과 같은 건물에만 쓰였다

문루 처마 밑에는 다포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 목재를 짜 맞췄는데

다포식 건물은 18세기 이후 궁궐에서도 거의 백년동안 짓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강원도 출신의 승려 목수인 굉흡이 와서 건설을 도왔다

서울의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 시대 성문을 대표하던 장안문은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1975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석축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불취무귀"~정조는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 자리에서 ,불취무귀, 라고 하였다

즉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불취무귀, 란 말은 실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벅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의미이다

한 편 아직도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군왕으로서의 자책감과 미안함을 토로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