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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걷다/강화나들길

강화)강화나들길,3코스(고려왕릉 가는 길)16.2km[23-03-27[월]

강화터미널에서 온수리행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길건너 버스정류장 옆에서 스탬프찍고

벽화가그려진 골목길을 지나 조금만 가면 "강화 온수리성공회성당(1906)" 있다

성당을 한바퀴 돌고나와 나들길 이어걷기

 

스탬프 : 온수리주차장 버스정류장 옆


Course3. 고려왕릉 가는 길

전등사의 고즈넉한 풍경소리를 들으며 개성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왕릉과 왕비릉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능묘가는 길.

  • 목적지 : 온수공영주차장 ~ 가릉
  • 거리 및 소요시간 : 총길이 16.2km, 5시간30분 소요
  • 난이도 : 편하게 걸을 수 있어요!(하)
  • 추천명소 : 성공회온수, 이규보묘, 고려궁지, 석릉, 가릉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1906년에 지어진 이 성당 건물은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 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이 성당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종탑]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이때 문루란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을 의미한다

건물 외형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으로 한 반면

내무 공간은 서유럽의 교회 건축 양식으로 구성하여 동서 조합을 이룬 것이 특징이다









성공회 소나무

보기 드문 기형목으로서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고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문화재인 온수리 성당을 지키는 듯 당당하게 서 있다

안드레아성당 옆에 베드로성당을 지을 때에는 살아있는 자연유산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실천한 사례로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건물의 위치를 변경해서 설계를 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소나무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듯 건물의 기형목이 창조한 하늘을 향한 하트 모양이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사람을 받고 있다

 



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조마가 산부가 1896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시작한 1900년 전후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증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신부가 한국 전통 주거 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생활해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 공간으로 가치가 높다

또 건축 수법이나 마름질 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여 기술적인 적용을 하였는가를 드러내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건물 형식은 'ㄷ' 자형 벽돌 구조로 된 5량 4칸의 홑집이다

 























이규보선생 묘 방향으로

 










이규보 묘 (설명)

고려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산 이규보 (1168~1241)의 묘소이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활동한 문인으로 명종 20년 1190 에 과거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많은 글을 썼다

고구려 동명성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역은 "동명왕편"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장경을 조판할 때 지은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 을 남겼다

이외에도"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국선생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조개나물이 엄청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이곳은 황토방인가 ?

 



이곳은 무엇으로 사용하던 건물인지 ? 느낌이 좀~

 










여기서 큰 길을 벗어나 흙길로

 









강화석릉 을 돌아보고 다시나와야 한다

 





강화 석릉 

고려 21대 왕인  희종의 무덤이다

희종은 최충헌의 횡포가 심해지자그를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재위 7년 1211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그는 고려고종 24년 1237 용유도에서 세상을 떠나 이곳에 안장되었다

2002년에 발굴 조사를 통해 돌로 만든 사람조각인 석인상 등이 발견되었고

청자상감국화문잔탁등 12-13세기상감 청자 전성기에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되었다

강화 석릉는 남한 역사에 남은 5기의 고려 대 왕릉과 왕비 릉 중에 하나로 고려 대 왕실의 묘지를 직접보고 연구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 /  江華 陵內里 石室墳

 

이 석실분은 강화 진강산 남쪽에 있는 고려 시대 무덤이다

무덤의 앞쪽에는  고려 원종1259 ~ 1274 재위 의 왕비 순경태우의 무덤인 가릉이 있다

무덤의 구조는  지하에 만든 석실 위로 흙을 쌓아 올린 봉분이 있고

그 바깥쪽으로는 난간석과 석수(짐승의 형상을 새겨 만든 석불)가 배치된 형태이다

무덤 뒤는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나지막한 담이 둘로쌓여 있다

석실의 높이는 203cm로 무덤의 주인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석실 규모와 은으로 만든 장식 등 출토 유물로 보아 왕실과 관련된 인물로 추정된다

축조 연대는 강화가 도읍이었던 시기1232~1270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강화 가릉 / 江華 嘉陵

 

강화 가릉은 고려 24대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 1222~1237의 능이다

순경태후는 고종 22년 1235원종이 탸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 해에 아들인 충렬왕과 딸을 연이어낳고 1237년에 1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순경태우는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인 최우의 외손녀로 외증조부는 최충헌이다

순경태후의 아버지는 김약선으로 그는 당시 임금이었던 고종의 신임을 받던 문신이었다

가릉은 돌방무덤으로 지하에 구먼을 파고 돌로 돌방과 입구를 만든 무덤이다 

무덤 주변의 석조물은 파괴되어 없어졌고 봉분도 무너졌으나  1974년에 보수 정비하였다

이후 2004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재정비하였다

강화 가릉은 고려 강종의 비인 원덕태후의 곤릉과 함께

남한 지역에 단 2기밖에 남아 있지 않은  고려 시대 왕비의 능으로

고려 왕실의 묘지를 직접 보고 연구 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지정 당시의 '가릉'이라는 명칭은 2011년 강화가릉으로 변경되었다

 



마지막스탬프찍고~강화나들길3코스 완주

길 건너지않고 버스타고 강화터미널로~